이영라 쉐프 | 쉐프에서 메뉴개발자로

경계를 뛰어넘는 푸드메이커

이영라 쉐프 #3

인사이더 | 이영라

에디터 | 차승언, 라일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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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그를 ‘프랑스 요리를 하는 셰프’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나는 프랑스 요리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그는 그저 ‘이영라 요리’를 한다. 새로운 식재료를 발견하면 테크닉이나 분야에 갖히지 않고 자유롭게 요리해보는 것이다. 이런 풍부한 호기심은 자연스럽게 그를 메뉴개발자의 길로 이끌었다. 요리사로서의 자기다움이 무엇인지 아는 그는, 메뉴마다 자기만의 색깔을 한 스푼 첨가한다.

쉐프에서 메뉴개발자로


나는 '이영라 요리'를 한다. 

프랑스 요리를 전공하셨지만 된장버터 시래기 우니 파스타, 토종곡물 간장밥 샐러드 등 국경을 넘나드는 메뉴를 자주 선보이시는 것 같아요. 이런 새로운 시도 또한 다양한 경험의 산물인가요?


물론 저는 프렌치 테크닉을 배웠지만, 그렇다고 프랑스 요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요리는 춤 같은 거예요. 언어, 국경과 같은 경계를 뛰어넘죠. 요리한 지 이제 9년차가 되었는데, 저 스스로 ‘나는 이영라 요리를 한다’고 정의하게 되더라고요.

한식, 일식, 프랑스 요리가 아니라 ‘이영라 요리를 한다’. 요리사로서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한 마디네요. 스스로 생각하는 요리사로서의 장점이 있다면요?


요리사로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 스스로 생각하는 딱 한 가지 장점이 있어요. 식재료에 대한 호기심이 엄청나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새로운 재료를 보면 날로도 먹고, 튀겨도 먹고, 쪄서도 먹어봐요. 테크닉을 가리지 않고 그 재료로 낼 수 있는 최상의 맛을 궁금해하죠.

식재료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셰프님을 메뉴개발자로 이끈 것 같아요.


이전에 다니던 회사는 호텔의 외주업체였어요. 그곳의 오너셰프였는데, 아무래도 호텔이 보수적인 편이에요. 호기심을 가지고 마음대로 창의력을 발휘하긴 어렵죠. 물론 그때 정말 좋은 경험을 했고, 다양한 행사를 유치했지만 딱 2년 하고 나니까 ‘아, 여기는 제약이 너무 많구나’ 싶더라고요. 다시 ‘내 것을 해야겠다’ 싶었죠. 

회사를 그만두고 제 레스토랑을 다시 오픈하려 하는 순간, 코로나19가 찾아왔어요. 그래서 레스토랑을 여는 대신, 1년 동안 메뉴 컨설팅을 하면서 저를 위해 차근차근 공부하는 시간을 갖기로 다짐했죠. 그러다가 위쿡 김기웅 대표님께 R&D 컨설팅 제안을 받게 됐어요.

커지는 HMR·RMR 시장, 셰프의 관심분야 되다

새 레스토랑을 오픈하겠다는 계획을 바꿔, 위쿡에 합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코로나19로 외식이 어려워지면서 HMR(가정 간편식)과 RMR(레스토랑 간편식) 시장이 빠르게 커지는 게 보였어요. 이 시장은 앞으로 더 폭발적으로 커질 거예요. 그런데 많은 셰프들이 이 시장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요리를 현장에서 맛보는 것이 아니라, 포장배달해야 한다는 점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시장이 더 커질 거라면, 이 시장을 제대로 발굴해서 기획해보는 게 내 스터디의 일부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메뉴개발자의 일은 어떠신가요?


너무 재미있는 건 떡볶이부터 시작해서 일식 캐주얼까지 제가 다 개발해볼 수 있다는 거예요. 셰프님들이랑 ‘이번에는 이런 걸 해보자’ 하면서 한 메뉴를 깊이 파고드는 거죠. 메뉴개발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마다 요구사항이 다 달라요. 이 세상에 없는 치킨을 만들고 싶다는 분이 계셨는데, 그러려면 얼마나 많은 조사와 연구 과정이 필요하겠어요. (웃음) 그런 과정들이 재미있어요. 

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을 듣고, 이에 맞는 메뉴를 만들어내는 게 결국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인데요. 사실 현장 셰프들이 생각보다 커뮤니케이션에 서툴어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 일을 하면서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을 많이 배우고 있어요. 

‘나는 이영라 요리를 한다’는 말씀 그대로 한식, 양식, 디저트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요리하고 계시네요.

앞으로 더 많은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어떤 메뉴에 관해 정해진 틀을 다양한 방식으로 깨보고, 원하는 걸 찾아드리는 작업 자체가 흥미롭거든요. 우리 회사가 결국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고민해봤어요. 저희 일의 본질은 외식창업자, 즉 푸드메이커들이 새로운 도전을 할 때 비효율적인 면을 제거해주고,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돕는 거라고 생각해요. 비용도 절감해주고 시행착오를 줄여주는 거죠. 결국은 모든 푸드메이커들이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고, 그걸 실현해주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일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6:2:2’, 메뉴개발자 된 셰프의 원칙 

레스토랑의 오너셰프로서 메뉴 개발을 할 때와 지금은 어떤 점이 다른가요?


내 레스토랑에서는 내가 나를 표현하면 돼요. 내 가게에 오시는 손님들만 설득하면 됐죠. 메뉴 개발 과정은 영화, 연극 한 편을 만드는 과정과 비슷했어요. 하나의 테마를 선택하고, 그에 맞는 장면과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작업이었죠. 여러 테마 중에서도 저는 ‘계절’을 굉장히 신경 썼어요. 정말 딱 그 계절에 먹어야 하는 음식들이 있어요. 예를들어, 가을에는 가을 햇빛 듬뿍 받은 식재료로 요리한 음식을 먹으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이 들죠.

지금은 제 고객이 아니라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야 해요. 클라이언트가 제시한 콘셉트에 딱 들어맞는 메뉴를 만들면서, 거기에 제 색깔도 입히죠. 일할 때 제가 정한 기준은 ‘6:2:2’예요. 작업 전체를 10이라고 가정할 때 6은 무조건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 2는 나 ‘이영라’만의 색깔, 나머지 2는 수익성을 고려해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추는 게 가장 중요하고, 반드시 ‘돈이 되는’ 메뉴를 만들어야 하죠. 하지만 제가 개발하는 메뉴이니, 저의 색이 들어갔으면 했어요. 저는 이 숫자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요.

클라이언트가 제시하는 방향이 트렌드나 시장 상황과 맞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하나요?


최대한 클라이언트의 니즈에 맞추려고 하지만, 제가 클라이언트를 강하게 설득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 ‘콘셉도 못 지키고 돈도 못 벌 수 있다’ 하고요. 가격대나 입지, 콘셉트, 레시피 등 현재 F&B 업계의 상황과 맞지 않는 요소가 있으면 새로운 방향으로 생각해 보시라고 제안해드리기도 해요.

‘이영라만의 색깔’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음식에서 산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산도를 잘 쓰면 음식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어요. 음식 한 그릇을 질리지 않고 끝까지 먹게 하는 건 산도의 역할이에요. 그래서 제 요리는 산도를 어느 양만큼 어떻게 썼느냐로 구분할 수 있어요. 요리의 산도는 시큼한 피클로도 줄 수 있고, 드레싱에 레몬즙으로도 줄 수 있어요. 한식에서는 절임류를 짜서 찌개에 넣어주는 방법도 있죠. 물론 산도가 요리 자체를 지배하면 안 되고, 요리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는 적절한 산도를 쓰는 게 관건이죠.

돈이 되는 메뉴와 그렇지 않은 메뉴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돈이 되는 메뉴를 만들려면 정교한 설계가 필요해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비용을 줄이고, 더 좁은 곳에서 요리할 수 있고, HMR로도 확장 가능한 메뉴를 짜드리는 거죠.  

돈이 되는 메뉴를 만들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중요해요. 첫 번째는 만족스러운 가격과 질을 갖춘 식재료예요. 예컨대 베이컨을 메뉴에 넣는다고 하면, 시장에 나와 있는 모든 베이컨을 조사해요. 좋은 가격과 퀄리티를 갖춘 베이컨을 찾을 때까지요. 

두 번째는 인건비 절감이에요. 손이 많이 가는 정교한 메뉴를 만들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인건비가 많이 들죠. 저희는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요. 장어덮밥을 예로 들면, 덮밥 위에 올리는 계란지단을 완벽하게 만들려면 숙달된 기술자 한 명이 더 필요해요. 그런데 잘 쓸 수 있는 완제품을 찾아드릴 수도 있죠.

마지막으로 음식 사업을 시작하려는 푸드메이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제가 생각했을 땐 음식을 판다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같아요. 노동강도도 세고, 경쟁상대도 너무 많죠. 인건비나 식재료비 등을 빼면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금액도 굉장히 낮고요. 그러니 ‘일은 오래 하기 싫은데, 돈은 좀 벌고 싶다’ 하는 마음으로는 뛰어들지 마시라는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어요.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겠다’, ‘내 가족이 먹을 수 있는 퀄리티의 요리를 만들겠다’는 다부진 각오와 진정으로 이 일을 즐기는 마음이 있으신 분들만 도전하시기를 바라요.

종횡무진. 그와의 인터뷰 내내 생각난 단어였다. 그는 직업과 직업의 경계, 요리계의 관행, 언어의 장벽, 요리의 분야를 그만의 실행력으로 자유롭게 넘나든다. 다양한 메뉴를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롭게 만드는 메뉴개발자의 일이 그와 잘 어울리는 이유다. 

“이전에는 그냥 예술을 했다면, 지금은 상업예술을 한다는 거죠.” 셰프였을 때와 지금 달라진 점을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자기만의 색, 클라이언트, 수익성을 조율하며 만들어내는 결과물. 푸드메이커의 메뉴판은 그 결과물의 목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