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라 쉐프 | 사랑하는 일을 선택한다는 것

경계를 뛰어넘는 푸드메이커

이영라 쉐프 #1

인사이더 | 이영라

에디터 | 차승언, 라일락

브랜드의 콘셉트와 지향점을 음식을 통해 고객에게 가장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것, 그것이 메뉴다.
위쿡의 R&D 총괄을 맡고 있는 이영라 셰프는 한식, 양식, 일식, 디저트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메뉴를 만드는 일을 한다. 메뉴개발자인 그는 2년 전까지만 해도 유명 호텔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였다. 그 전에는 부암동에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운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30세가 훌쩍 넘어 요리계에 입문했다는 사실이다. 법학자를 꿈꾸며 공부했고, 변호사로 일하던 그가 요리로 방향을 튼 이유는 무엇일까.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던 한 사람을 돌려 세운 요리의 매력을 알고 싶어졌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선택한다는 것.


“왜 변호사에서 요리사 됐을까?” 질문이 의미없는 이유

법학을 전공하셨어요. 미국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치셨는데, 요리를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직업을 고를 때,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변호사는 안정적이고 돈을 많이 번다는 이유로 ‘좋은 직업’으로 소개돼요. 물론 변호사도 좋은 직업이지만, 저에게는 직업을 선택할 때 돈이나 안정성이 1순위가 아니었어요. ‘내가 그 일을 하면서 얼마나 신이 나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죠.

‘덕업일치’의 삶을 기준으로 두신 거군요?


‘도대체 왜 변호사에서 요리사가 돼?’ 라는 질문, 사실 요즘 MZ세대들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평생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오히려 내가 너무 재밌으면 연봉에 매이지 않고 선택하는 분이 많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삶이 곧 일이고, 일이 곧 삶인 경우가 많죠. ‘이왕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로 밥 벌어 먹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어요. 물론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로스쿨도 갔지만 제 자신에게 ‘평생 이 업으로 행복하게 먹고 살면서 할 수 있을까?’ 물었더니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온 거죠.

요리사가 되겠다는 결정은 어떻게 내리셨나요?


잘 생각해보면, 변호사는 억울한 사람만 만나요. 하지만 요리사들은 그날 제일 행복한 사람들만 만나죠. 특히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는 기념일이나 누군가와 함께 소중한 순간을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요. 그런 사람들에게 원하는 순간을 만들어주는 직업이 바로 요리사예요. 연봉이 어마어마하게 차이나는 이동이었지만 한 순간도 그게 저에게 마이너스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원하는 순간을 만들어주는 직업’ 이라는 표현이 참 와닿아요.
현실의 기로에서 용기내어 오랜 시간동안 꿈꾸던 직업을 선택하는 모습, 요즘 MZ세대가 바라는 모습이기도 해요. 언제부터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셨나요?


어렸을 때 잠실에 살았었는데, 저희 동네 가까이에 가락시장이 있었거든요. 부모님이 시장에서 싱싱한 생선을 사오시고, 주말이면 그걸로 요리를 해 먹었어요. 두 분이 굉장한 미식가이시기도 했고요. 철마다 나는 식재료를 가족이 함께 다듬고, 요리하는 시간이 저에겐 즐거움의 결정체였어요. 

요리를 직업적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중학생 때예요. 공부하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면, BBC 채널에서 요리연구가 제이미 올리버의 쇼를 찾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어요. TV 속 제이미 올리버는 식재료를 다듬을 때에도 ‘이게 얼마나 맛있을까’ 상상하면서 신이 나 있었어요. 즐겁게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자연스럽게 ‘맛있는 요리로 나도 신이 나고 상대방을 위로해줄 수 있다면, 요리사는 최고의 직업 아닐까?’ 생각하게 됐죠. 그 무렵부터 ‘언제 요리사가 될까?’ 고민하다 서른두 살에 변호사를 덜컥 때려치고, 요리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 숙명 아카데미에 입학했죠.  

늦깎이 막내 셰프, 2년 만에 오너 셰프 되기까지

불도저같은 실행력이시네요. 인생의 기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잖아요. 요리학교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1년간의 요리수업이 제 평생 가장 행복했어요. 같이 공부하는 동료들에게도 제가 얼마나 신나서 배우는지가 느껴졌을 거예요. 사실 나이가 많아서 막내 요리사로 취직이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저를 가르쳐주신 셰프님이 졸업도 하기 전에 본인이 스카웃된 레스토랑에 취직시켜 주셨어요. 당시 저희 팀이 열여섯 명이었는데 막내인 제가 가장 나이가 많았어요. 

남성들이 장악하고 있는 우리나라 요리 현장에서 나이 든 여성이 요리를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어요. 셰프님이 프랑스 분이셔서 나이나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저를 있는 그대로 봐주신 것 같아요. 그 셰프님 덕분에 2013년에 레스토랑에 취직을 했고, 셰프님 옆에 딱 붙어서 진짜 많이 배웠어요. 그러곤 또다시 덜컥, 1년 후에 한국에서 제 레스토랑을 오픈했어요. 

부암동 ‘프렙’

꼭 소설 속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내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열겠다는 결정은 설레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담도 컸을 것 같아요.

함께 일했던 프랑스 셰프 부부와 부암동에서 프렙이라는 레스토랑을 오픈했는데, 제가 요리를 도맡고 두 분은 손님들을 맞이하고 운영을 도와주셨어요. 오픈하자마자 너무 유명해져서 정말 바빴어요. 덕분에 스킬도 많이 늘었죠. 와인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즐겨 찾는 곳이 돼서, 와인도 많이 접할 수 있었죠. 2015년에는 오롯이 저 혼자 레스토랑을 운영하게 됐는데요. 그러고 나서 재미있는 기획을 많이 했었죠. 요리에도 제 색깔을 많이 드러내고요.

막내 셰프가 된 지 2년 만에 오너 셰프가 되셨는데, 일하는 데 힘든 점은 없었나요?


보통 주방에서 7~8년 정도 경력을 쌓은 후, 레스토랑을 오픈하죠. 경험치가 어느 정도 쌓여 있는 상태에서요. 저는 그런 경험치 없이 바로 레스토랑을 오픈하게 됐죠. 그런데 실력과는 상관없이 주방에서 제 목소리에 힘이 잘 안 실리는 거예요. 주방에서는 오너 셰프의 리더십이 진짜 중요한데 말이죠. ‘돈 많은 변호사가 취미 삼아 요리하는 거 아닌가’ 하는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그게 아닌데. 정말 진심인데, 어떻게 표현하지?’ 고민하다가 한 달 동안 식당을 비우고 프랑스로 날아갔어요. 그곳 셰프의 주방에서 스타주(인턴)을 시작했죠

이영라 쉐프의 두번째 인터뷰에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