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석 PD는 20년 넘게 음식 프로그램을 만들어 온 우리나라 대표 음식 전문 PD다. 2009년 국내 최초 요리 서바이벌 <예스 셰프>에 이어 <테이스티 로드>, <마스터셰프 코리아> 등을 제작했다.
PD는 세상의 작은 움직임을 포착해, 콘텐츠로 구현해내는 사람이다. 콘텐츠가 사랑받으면 작은 움직임은 트렌드가 되기도 한다. 음식 전문 PD는 어떻게 F&B 업계의 변화를 포착해낼까. 지금 그가 눈여겨보고 있는 움직임은 무엇일까. 11월 17일 오후, 위쿡 사직지점에서 하 PD를 만났다. 그는 22년간 체감한 업계의 변화를 두 줄기로 설명했다. ‘미식문화’ 그리고 ‘개인화’다.
20년 경력 ‘쿡방’ PD, F&B의 변화를 말하다
20년간 F&B 업계의 변화: 미식문화, 개인화
콘텐츠 업계에서는 ‘국내 최고의 쿡방 전문가’로 통합니다. 요리 프로그램이 많지 않던 2009년, 국내 최초로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예스 셰프>을 만들었죠. 어떤 변화를 포착한 건가요?
이 질문에 답을 하려면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 그 당시 저는 PD가 아니라 고등학생이었지만요. (웃음) IMF를 거치면서 온 가족이 푸짐하고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다룬 프로그램이 많이 나왔어요. 형편은 어렵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한 끼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던 거죠. 2000년대 후반이 되면서 차를 타고 외식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늘었어요. 음식을 먹기 위해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죠.

‘가족과의 단란한 한 끼’에서 ‘고독한 미식’의 시대가 열린 거네요.
미식문화가 확장되기 시작한 거죠. 당시에 친하게 지내던 외국 PD가 <헬스 키친>이라는 미국 프로그램을 소개해줬어요. 고든 램지가 진행하는 요리 서바이벌 프로였죠.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죠. 맛있는 음식, 근사한 식사에 대한 관심이 커진 우리나라에서도 통할 수 있는 포맷이라고 생각했어요.

다음 해 제작한 <테이스티 로드>는 삼삼오오 모여 맛집을 찾는 문화를 만들어내기도 했죠.
작업하는 브랜드마다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요소가 달라요. 이전에는 단체로 모여서 음식점을 방문했다면, 혼자 또는 두세 명이서 음식점을 찾아다니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실제로 제 주변에도 그런 분들이 늘어나고 있었고요. 음식문화가 개인화·세분화되는 거죠. 그러면 친구나 연인과 함께 갈 만한 음식점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시청자 반응은 어땠나요?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는 반응이 많았죠. 그런데 있어 보이는 척한다고 욕도 정말 많이 먹었어요. (웃음) 가니쉬, 마리네이드 같은 요리 용어를 ‘좀 더 쉬운 우리말로 바꿔 달라’는 의견이었는데, 바꿀 단어가 마땅치 않았죠. 지금은 많은 시청자에게 익숙한 단어지만, 당시에는 생소하고 어색하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음식 전문 PD가 음식점 주방을 기웃거리는 이유

2012년 한국판이 제작되었다. (출처 : 올리브 TV)
<예스 셰프>, <테이스티 로드>가 미식 프로그램의 시작이라면, <마스터셰프 코리아>는 본격적으로 미식의 세계를 알린 프로그램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촬영을 앞두고 제작진 모두가 요리를 배웠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셨나요?
촬영 전 3개월 동안 매주 주말에 모여서 쿠킹클래스를 들었어요. 유명한 음식점을 돌아다니면서 맛이 어땠는지 이야기도 나누고요. 촬영 틈틈이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속재료 맞히기’ 같은 퀴즈를 하기도 했어요. 그때 만난 제작진이 <한식대첩>도 함께 제작했죠.

요리를 만드는 경험이 프로그램 제작에 도움이 되나요?
<마스터셰프 코리아>는 모든 과정이 라이브로 진행되기에 요리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작 방향을 정하기가 어려워요. 예를들어, 여섯 명의 셰프가 요리하는 장면을 찍는다면 PD는 재료를 써는 모양, 사용하는 소스 등을 유심히 관찰해요. 셰프 한 명 한 명이 어떤 음식을 만들 건지를 예측해야 조리 과정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죠. 셰프가 제한시간 내에 완성하기 어려운 요리를 만들 경우, PD는 칭찬을 통해 요리에 속도가 붙도록 독려해주는 역할도 하고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맡기 전에는 꼭 음식점 주방에 들르신다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기도 한데요. 출연하는 셰프의 음식점을 찾아가서 카메라를 들고 주방에 가만히 서 있어요. 처음에는 주방에 계신 셰프들도 어색해 하시는데, 3~4일 정도 지나면 제 존재를 잊어버리세요. (웃음) 주방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저 표정을 지으면 어떤 일들이 생기는지 파악해요. 며칠이 지나면 주방이 편해지기 시작해요. 셰프들만 사용하는 용어도 알아듣게 되고요. 그런 후에 프로그램 제작에 들어가서 셰프들을 만나면 소통하기가 훨씬 수월해지죠.
하정석 PD의 두 번째 인터뷰에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