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석 PD | K-Food, 세계로의 확장

세상의 맛있는 움직임을 콘텐츠로 구현하다, 하정석PD #3

인사이더 | 하정석

에디터 | 차승언, 라일락

“우리나라의 음식점 수는 얼마나 될까요? 2018년 자료에 따르면, 인구 1만명당 125개의 음식점이 있다고 해요. 이웃나라 중국(66개), 일본(59개)에 비해서는 2배, 미국과 홍콩(각21개)에 비해서는 6배나 많은 수치죠.”

미식가들에게 한국은 즐기기 좋은 나라다. 골목골목 다양한 스타일의 음식점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반면 음식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문을 연 음식점 열 곳 중 여덟 곳은 5년 이내에 문을 닫는다. 

요리 전문 PD로 일하며 수많은 푸드브랜더를 지켜본 하정석 PD는 F&B 비즈니스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하 PD와 요즘 F&B 비즈니스의 위기와 기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본 푸드 산업의 미래


‘여기 곧 소문나겠구나’ 쿡방 PD가 맛집을 알아보는 법
위쿡 사직점에서 만난 하정석 PD

직접 레스토랑을 여는 게 꿈이었다고요. 그 꿈은 지금도 변함 없으신가요?

요리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언젠가는 내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친구 중에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음식점 셰프가 있어요. 그 친구를 만나서 레스토랑을 차리고 싶다고 했더니, 이 비즈니스가 실제로 어떤지 한번 느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 일과를 하루 관찰하고 나서는 마음을 접었어요.

셰프 친구의 일과가 어땠기에 바로 마음을 접었나요?  

음식점 영업이 끝나도 친구의 일과는  끝나지 않아요. 가게 문을 닫으면 오늘 매출과 예상 매출을 매일 분석해요. 그다음, 투자자들에게 공유하죠. 그러고도 틈틈이 신메뉴를 개발하고, 셰프들을 만나고, 새로운 재료를 찾아봐요. 자기 시간이 하나도 없는 거죠. 저는 친구처럼 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나는 그냥 좋아하는 음식점 찾아다니는 PD로 살아야겠다’ 했죠. (웃음) 

<한국인의 오래된 밥집> 방송 화면. 노포에서는 언제나 변치않는 맛과 세월의 위안을 만날 수 있다.(출처 : KBS)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트렌드를 빠르게 포착해내야 할 텐데요. 새로운 식당에 자주 가시는 편인가요? 식당에 방문해서 무엇을 관찰하시는지도 궁금해요.

내면에 호기심과 에너지가 가득할 때는 새로운 음식점을 찾아서 가요. 음식점 안에 들어가면 손님들 표정을 유심히 보죠. 대화내용도 듣고요. 음식을 먹고 난 후에 표정이나 대화내용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곳이 있거든요. 그러면 ‘여기 곧 소문나겠구나’ 하고 짐작하죠. 요즘은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잘 알 수 없지만요. 

심리적으로 힘들 때는 노포에 가요. 오랜 세월을 견뎌낸 곳이잖아요. 익숙한 맛의 음식을 먹다 보면, 그 집의 시간에 기대 위로받는 기분이 들죠. 

유행 따라 바뀌는 F&B업계, 지속 가능한 브랜드 만들려면 
익선동의 골목길. 트렌드에 따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가게들이 많다. 

요즘은 오래된 음식점 찾기가 참 어렵죠. 음식도 패션처럼 유행에 따라 빠르게 바뀌는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F&B 브랜드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F&B가 패션화된다는 말씀에 공감해요. 새로 생기는 가게들을 보고 있으면 한 시즌에도 몇 번이고 상품이 바뀌는 SPA 의류 브랜드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만큼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요. 잘될 것 같다는 주관적 판단만으로 음식점을 열었다가 실패하는 분들도 많이 봤는데요. 그런 분들을 보면서 창업을 하기 전에 ‘테스트’ 해보는 시간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업 전에 어떻게 아이템을 테스트 해볼 수 있을까요?

가게를 계약하기 전에 공유주방 같은 곳에서 음식을 만들어보는 거죠.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평가를 받기도 하고, 타깃 고객이 있는 곳에 직접 배달해보기도 하고요. 다른 음식점에 가서 “재료비 안 받을 테니, 제 음식 좀 팔아주실래요?” 하고 제안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 같아요. 사람들이 돈을 내고 내 음식을 얼마나 사 먹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K푸드의 글로벌화, 한국에서 사랑 받는 글로벌 푸드 

이번엔 좀 낙관적인 이야기를 해볼까요. 최근 F&B 시장과 관련해 주목하고 있는 긍정적인 움직임이 있다면요?

‘세계로의 확장’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크게 두 가지 움직임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K푸드가 다른 나라에서도 사랑받고 있다는 거예요. 5년 전에 딩고푸드 PD로 일한 적이 있어요. 2030이 주로 보는 요리 영상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스팸튀김 같은 레시피 콘텐츠 조회수가 100만이었어요. 국내뿐 아니라,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분들이 영상을 많이 봤더라고요. 기획만 잘하면 아시아에서 즐겨 보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만들까 고민했죠.

<냉장고를 부탁해> 성희성 PD와 함께 만든 <팀셰프>가 고민의 결과물 같네요. 한국과 태국 셰프가 팀을 만들어 레시피를 개발하는 프로그램이었죠. 우리나라와 태국에 동시 방영되기도 했고요.

보통 음식 프로그램은 국내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 음식을 통한 교류를 담아내고 싶었어요. 음식은 언어를 뛰어넘거든요. 말이 통하지 않아도 음식은 얼마든지 나눠 먹을 수 있으니까요.

글로벌 셰프들의 요리로 세계를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 헬로 플레이트 (출처 : SKY,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

지난해에 만든 <헬로! 플레이트>에서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셰프들이 요리 대결을 펼쳤는데요. 어떤 변화를 반영한 프로그램이었나요?

여러 나라의 음식을 경험해보려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난다고 느꼈어요. K푸드의 세계적인 인기 못지 않게, 다양한 나라의 음식이 우리나라에서 사랑받고 있죠. <팀셰프>는 원래 ‘푸드 코트 레이스’ 같은 기획이었어요. 상가 안에 푸드코트를 만들고, 이방인 셰프들이 영업을 하는 거죠. 그러면 사람들이 방문해 여러 나라 음식을 다같이 먹어보고요.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요리 대결’로 콘셉트를 바꾸게 됐는데, 더 많은 사람들과 음식을 먹는 경험을 함께하지 못한 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어요.   

‘혼밥’이 당연해진 시대, 다시 ‘집밥’을 말하는 이유

코로나19도 F&B 업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죠. 코로나19 이후에는 어떤 움직임을 주의깊게 보고 있나요?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음식점을 찾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늘어났어요. 이 증가세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돼가는 움직임인지,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서도 유의미한 변화인지를 관찰하고 있는 중이에요. 후자라면 음식점의 운영 패턴이나 형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죠. 그 변화는 제가 만드는 프로그램 내용에도 영향을 미칠 테고요.

함께 요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소셜 다이닝 문화가 늘고 있다. (출처 : 남의집)

다음에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이 질문은 ‘앞으로 식문화가 이렇게 변화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 관한 것이기도 하겠네요.

직접 요리한 음식을 이웃이나 친구들과 나눠 먹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음식을 나누며 감정이나 정보를 공유하는 건 영장류뿐이에요. 음식을 나누는 건 지극히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인데,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못하죠.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내가 잘 살고 있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하정석 PD는 정성스럽게 만든 집밥을 즐긴다. (출처 : 하정석 PD 인스타그램)

하지만 ‘혼밥’이 일상화된 시대에 음식을 나눠 먹는 건 쉽지 않은 일 같아요.

음식을 나누기까지는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직접 요리할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다음날 학교나 직장에 와서 “어제 뭐 해 먹었어? 나 이거 해 먹었는데 레시피 공유해줄까?” 이런 대화도 하고요. 레시피에는 저작권이 없으니까요. 그러면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좋은 재료가 듬뿍 들어간 ‘집밥’ 같은 음식을 하는 가게들도 점차 늘어나지 않을까요?

가족과의 한 끼에서 삼삼오오 즐기는 미식, 혼밥까지. 하 PD와의 인터뷰는 20년에 걸친 식문화의 변화를 되짚는 시간이었다. 그는 "혼밥의 일상화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라면서도 "혼밥이 '쿨'한 라이프스타일로만 비춰지는 것은 안타깝다"고 했다. '쿨'함이 채울 수 없는 식사시간의 '온기'를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혼밥 다음에 올 식문화의 변화는 이 질문에 각자의 답을 내놓는 과정에서 시작될 것이다.